
왜 청렴인가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 국제 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2013년 국가별 부패인식 지수 한국 (177개국 46위)
-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해마다 하락 중
부패가 나라를 좀먹는다!
- 국부패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 "35조원" (2012년)

청렴이 곧 경쟁력이다!
현대사회에서 더욱 더 강조되는 청렴의 중요성
- 부패인식지수 1점
- 1인당 교역 31%/ 외국인 투자관심도 26%/ 1인당 국민소득 4713달러↑ (출처: 한국행정학회)
-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평균(4.7)이 OECD국가들의 평균(7.0) 수준으로 회복되면 잠재성장률 4% ↑
- 1995년~2010년 부패인식지수 평균 : 10점만점 중 한국 4.7/OECD 7.0
- 부패인식지수는 2012년부터 100점 만점으로 기준 변경 (출처: 현대경제연구원)
청백리 개념 및 소개
청백리란?
- 유교문화권에서 깨끗한 공직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되어 청백리안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 청백리는 청렴결백에 그치지 않으며 인의가 넘쳐야 함(직무수행 능력과 청백, 근검, 경효, 후덕, 인의등의 덕목을 겸비한 관료)
- 조선시대, 정2품 또는 종2품 이상의 고관과 사헌부의 대사헌, 사간원의 대사간이 추천하여 뽑던 청렴한 벼슬아치(청렴한 관료는 살아서는 염근리 죽어서는 청백리라 불림)
조선의 청백리
조선시대의 청백리
- 태조 때 5명의 청백리를 녹선, 이후 순조 때까지 청백리를 선발함
맹사성 孟思誠 1360년 (고려 공민왕)- 1438년(조선 세종)
황희黃喜 1363년(고여 공민왕)-1452년(조선 문종)
이원익 李元翼 1547년(조선 명종)-1634년(조선 인조)
장성의 청백리
청렴과 효의 전통을 확립한 청백리 송흠宋欽 1459년(조선 세조)-1547년(조선 명종)
- 장성군 삼계면 출신
- 호 지지당知止堂, 시호 효헌孝憲

장례 치를 비용도 없었던 청백리 박수량朴守良
1491년(조선 성종)-1544년(조선 명종)
- 장성군 황룡면 출신
- 호 아곡莪谷, 시호 정혜貞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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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비 白碑 *
명종임금은 서해바다 암석에서 돌을 골라 비碑를 하사하고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