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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불교의 전래와 백양사
  • 2. 역사속의 고승기행 및 행적
  • 3. 불교의 활동 및 포교

1. 불교의 전래와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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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침류왕 2년(384)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시기는 백제의 수도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자리잡고 있던 때였다. 백제의 수도로부터 거리가 먼 장성지역까지 불교가 전래되기에는 기나긴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백제는 문주왕 때(479년) 웅진(현재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기었고, 다시 성왕 때는(538년) 사비성(현재의 부여)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백제의 수도에서 장성 지역까지의 문화 전파 경로가 상당히 단축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불교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렀고 특히 사비천도 이후에는 백제의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5방제(方制)가 실시되고 남방(南方)의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불교문화의 전파가 장성 지역에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 지역은 비록 백제의 변방이기는 하나 이미 커다란 고을을 형성하였으므로 늦어도 백제말기에는 불교가 전래되었을 것이다. 북쪽으로 이웃하는 정읍과 김제 지역에서 백제의 불상이 발견되어 조사된 바 있어 장성 지역 역시 백제 불교문화의 유물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아직 이것을 검증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고대사회에서 비교적 왕도(王都)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자리잡은 장성 지역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말미암아 불교문화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더디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전남지역에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장성 지역은 인접한 정읍과 김제 지역에 전파된 불교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리적인 유리한 여건으로 전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우선하였을 것으로 상정된다.

장성지역의 불교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비록 후대의 것이지만 백양사가 가장 먼저이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선사(如幻禪師)가 사찰을 창건하고 절 이름을 백암사(白岩寺)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데서 비롯된다. 백암사는 고려 덕종 3년(1034) 중연조사(中延祖師)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고쳐 정토사(淨土寺)라 불렀다. 고려 충정왕 2년 진각국사 (覺眞國師) 복구(復丘)가 3창 하였으며, 정조 10년 환성선사(喚惺禪師)가 중창하였고, 조선말기 고종 원년 도암선사(道巖禪師)가 4창 하였다. 조선 개국 526년(1917) 만암선사(曼庵禪師)가 5창 하였다. 이후 백양사는 자비와 지계의 엄정함을 이은 환응탄영의 맥을 이어 교편을 잡고 치문의 경책을 부지런히 펴 석전한영선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로 우리나라 5대 총림의 하나로 사격을 유지하고 있다.

백양사의 사찰 명칭의 변화를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7-1] 백양사의 사찰 명칭 변화

백양사의 사찰 명칭 변화 - 사찰명, 시기, 관련스님, 출전 제공 표
사찰명시기관련스님출전
白巖寺창건­1034(?)異僧/ 如幻[白巖山淨土寺橋樓記]
淨土寺(淨土禪院)1034(?)­14세기 [白巖山淨土寺事蹟
白巖寺15세기 [白巖寺轉藏法會당사방
淨土寺16세기­19세기중반 {新增東國輿地勝覽}
白羊寺19세기 후반曼庵[重修板刻記]
古佛叢林 白羊寺1996년西翁, 智詵

백양사에 소속된 암자의 초창연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운문암(雲門庵) 초창 고려 충정 2년 각진국사(覺眞國師)
약사암(藥師庵) 동 3년 동
물외암(物外庵) 동 동 동
영천암(靈泉庵) 동 동 동
청류암(淸流庵) 동 공민 원년 동
천진암(天眞庵) 동 조선 인조 22년 백곡선사(白谷禪師)
금강암(金剛庵) 동 고종 29년 만암선사(曼庵禪師)
서양암(西陽庵) 동 41년 치호수좌(致浩首座)
쌍계루(雙溪樓) 동 고려 공민 19년 청수선사(淸 禪師)
2창 조선 고종 37년 금해선사(錦海禪師)

장성지역의 불교나 사찰은 백양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백양사를 살펴 봄으로써 장성불교를 흐름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토사로 불리우던 절이 백양사로 불리우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이어져 온다.
조선 선조 7년(1574) 환양선사(喚羊禪師)가 백양사라 개칭하였다. 환양선사는 법화경을 독경하며 기도하였는데, 백학봉 밑에 사는 흰 양이 암자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스님의 독경소리를 귀기울여 듣고 돌아가곤 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스님의 독경소리에 깨달음을 얻어 축생의 몸을 벗고 이제 사람의 몸으로 환생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절하고 물러났다. 스님은 이를 이상히 여겨 다음날 아침 뒤산을 산책하던 중 흰 양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해하였다. 그 후로 스님의 높은 법력에 의해 축생인 양을 제도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백양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백양사 근처에는 숱한 외적과 전쟁을 치루어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입암산성이 있다. 이 산성에서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의 침입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1592년 7월 20일 장성 남문(현재의 북일면 오산)에서 김경수(金景壽), 기효간(奇孝諫), 윤진(尹診) 등이 격문을 각 고을에 보내어 의병을 일으켜 김경수를 맹주로 추대하고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아 북으로 진군하여 직산, 진성, 용인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한 남문창의 의병항쟁을 일으켰다. 이 남문창의에 의승장(義僧將)으로 처능(處能), 자혜(慈惠), 의관(義寬), 계묵(啓默), 덕인(德忍), 처한(處閒), 학인(學仁), 계한(戒閒), 혜인(惠仁) 등 9명의 승려가 참여했다. 또한 동학농민전쟁 당시 백양사 스님들이 다수 참여해 농민군과 함께 싸워 순절하여 역사와 민족과 함께 해온 백양사의 의절과 기개의 전통을 이었다.

백양사의 또 하나의 소중함은 가장 엄격하고 전통적인 불교 재의식(齋儀式)이다. 관조부, 전경부, 정근부, 송주부, 범음부가 독립된 의식으로 집전되며 여기서 정근, 송주, 범음은 거의 독보적인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유일무이한 전통 불교의식이다.

백양사는 예로부터 훌륭한 선지식인 큰스님들이 백양사 입구에 줄지어 있는 고목나무들처럼 끊이지 않았으며, 백양사의 운문암은 고려 각진국사를 비롯 조선시대 소요태능, 편양언기, 연담유일 등 조선말기 불교를 이끌어 왔던 백파, 학명스님, 그리고 용성, 인곡, 석전, 만암, 고암스님 등 암울했던 일제시대 우리나라 불교법통을 이어온 고승 선덕 스님들이 상주수행하여 수행근본도량으로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에는 산내에 12암자가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최근 대부분 복원되었다. 다만 묘련암만 빈터로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곳에는 장서각이 있었다고 한다. 전란으로 소실되었던 쌍계루를 1985년 복원하였다.

백양 12경으로 쌍계루, 운문암, 영천암, 약사암, 감로천, 대웅전, 비자림, 비림, 용수탕, 천진암, 청류암, 봉황대가 있다.

백양사 12암자는 운문암, 청류암, 물외암, 약사암, 영천암, 천진암, 묘련암, 백련암, 서양암, 금강대, 지장암, 청량원이다.

백양사는 13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숱한 고난과 전란 속에서도 민초들과 함께 해 온 호남불교의 요람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이 남으로 치달려와 그 신령스러운 기운이 백암산에 치솟아 학이 날개를 편듯한 백학봉의 수려하고도 장엄한 기상의 품에 안겨 자리잡고 있다. 백양사 경내에는 고풍을 자랑하며 단아하게 지어진 극락보전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맛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대웅전, 사천왕문 등 지방 유형문화재가 있어 선조들의 빛나는 문화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또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비자나무숲과 차밭이 펼쳐져 있어 부드럽고 온화한 기품이 있다.

백양사는 1996년 3월 31일 열린 제120회 조계종 종회에서 고불총림으로 승인됨에 따라 이 지역 불교계의 활성화는 물론 수행도량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백양사의 총림지정 배경은 개혁종단 출범이후 여러가지 법과 제도를 제정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본 말사의 자치권이 약화된데다 왜색 서구문화범람과 더불어 타락한 승풍을 진작하고 민족정기를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총림이란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구비해야만 자격요건에 해당되며 명실공히 백양사가 종합수행도량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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